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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은 종교계의 연대ㆍ선도로 이뤄진 것
작성일 : 17-02-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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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태화회관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기념 준비 학술심포지움’ 모습

 

3·1운동은 천도교, 기독교 및 불교계 지도자들이 앞장섬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운동은 종교계의 연대와 선도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1운동 100주년을 2년 앞두고 이를 준비하는 학술심포지움이 한국기독교역사학회 주최로 23일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에서 '3·1만세운동과 종교계'란 주제로 열렸다.
이날 학술심포지움에서는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의 기조강연을, 김승태 박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제1발표를 한 데 이어 조규태 교수(한성대), 김광식 교수(동국대), 이덕주 교수(감신대)가 각각 3·1운동과 천도교ㆍ불교ㆍ기독교를 주제로 발제했다.
기조강연에 나선 이만열 교수는 ‘3·1만세운동과 종교계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3·1만세운동과 그 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종교계의 동향과 역할을 정리, 거족적인 이 운동이 어떤 경위를 거쳐 이뤄졌으며 그런 과정에서 종교계의 역할이 어땠는가를 살폈다.
이 교수는 먼저 당시 종교계가 3·1만세운동에 앞장서게 된 데에는 강점초기의 일제의 강압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이 교수에 의하면, 강점 후 일제는 일체의 집회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고 포고를 통해 민간에서 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했으며 몇 차례의 조사를 통해 갖고 있는 무기마저 신고하여 몰수해 갔다. 그 때문에 종교계 이외에는 민간이 스스로 집회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교수는 “3·1만세운동 같은 거족적 민족운동을 조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겨우 유지되는 합법적인 공간은 종교적인 행사밖에 없었는바 종교인들의 역할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교수는 “3·1만세운동은 천도교 기독교 및 불교계 지도자들이 앞장섬으로 이뤄졌다. 그런 점에서 이 운동은 종교계의 연대와 선도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만열 교수를 비롯, 이날 발표자들의 발제에 의하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그룹은천도교와 기독교다. 해외독립운동가들과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간파한 두 종교계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독립만세운동을 구체화했다.
각자 내부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구체화하던 두 종교가 연대를 한 것은 1919년 2월의 일로, 최남선이 천도교 측 최린을 방문, 기독교측에서도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를 나누게 되었 고, 최린이 이승훈에게 연락을 취해 만남으로 이뤄졌다.
당시 기독교는 평안도 정주와 평양에서 이승훈이 장로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동안에 서울에서는 감리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움직임이 있었는데. 최린과 이승훈의 만남 이후 이승훈을 통해 하나로 정리돼 2월 24일 밤 양측 대표가 만나 협동전선을 성립시켰다
그에 앞서 2월 20일경부터 천도교측과 기독교측은 서로 만나 거사일시와 장소를 협의하고 거사에 따른 업무도 분담했다.
독립선언서의 기초와 인쇄는 천도교측에서 맡고, 지방 분송은 기독교측과 협력키로 했다. 독립선언서를 일본정부와 귀족원에 전달하는 업무는 천도교 측이, 미국 대통령과 파리 평화회의에 전달하는 일은 기독교측이 맡았다.
양측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를 각각 십수명씩 선정토록 하고, 불교측도 연명에 참가하게 됐다. 불교계와의 연대는 한용운을 통해 이뤄졌다.
한용운은 3·1만세운동 계획 당시 임제종 설립운동의 주축세력을 불교계의 민족대표로 참여시키고자 했으나, 사찰들이 깊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당시 서울에 올라와 있던 백용성 한 사람만 민족대표로 참여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연합과 관련 이덕주 교수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를 구성하고 운동방법론을 확정하며 거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종교 간의 서로 다른 신념과 이념의 장벽을 넘어 서로 양보하고 협력함으로 민족 공동체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간 연대’가 빛을 발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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