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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브라우닝의 “랍비 벤 에즈라”
작성일 : 16-01-21 17:13

로버트 브라우닝의 “랍비 벤 에즈라”

도공의 녹로와 물병의 관계를 새기면서 살았으면!

조 신 권(연세대 명예교수)

명문에로의 초대

1) 좁은 행동 속에/포장해 낼 수 없는 사고들,/언어를 뚫고 달아나는 상상들./내가 결코 이를 수 없었던 모든 목표들,/내 속에 있지만 사람들이 무시했던 모든 것들,/이것은 하나님께 가치 있는 것, 그분은 녹로로 물병을 만드셨도다.

2) 아, 그 도공의 녹로라는/그 비유에 유의하라! 그리고 왜 시간이 빨리 맴돌고,/왜 우리들의 흙이 가만히 누워 있는가를 느끼라./물병이 돌아갈 때,/“인생은 빠른 것. 모든 것은 변하고 과거는 지나가니/오늘을 잡자”고 하는 바보들의 제의를 받는 그대여!

3) 바보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돌이킬 수 없이 영속하는 것이다./땅은 변하나 그대의 영혼과 하나님은 굳건히 서 있느니라./그대 속에 들어온 영혼,/그것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으리라./시간의 녹로는 후퇴하거나 정지한다. 허나 도공과 흙은 영속한다. -브라우닝의 “랍비 벤 에즈라”의 일절

1) `Thoughts hardly to be packed/Into a narrow act,/Fancies that broke through language and escaped;/All I could never be,/All, men ignored in me,/This was worth to God, whose wheel the pitcher shaped.

2) Aye, note that Potter’s wheel,/That metaphor! and feel/Why time spins fast, why passive lies our clay,―/Thou, to whom fools propound,/When the wine makes its round,/“Since life fleets, all is change; the Past gone, seize to-day!”

3) Fool! All that is, at all,/Lasts ever, past recall;/Earth changes, but thy soul and God stand sure:/What entered into thee,/That was, is, and shall be:/Time’s wheel runs back or stops: Potter and clay endure.

위의 ‘명문에로의 초대’석에 올린 시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3대 시인 중의 하나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의 장시 “랍비 벤 에즈라”(Rabbi Ben Ezra)의 마지막 부분의 세 연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초년에는 별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말년에는 전적으로 기독교의 삼대 미덕인 사랑과 소망과 신앙을 그의 시 속에 구현한 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높은 찬사를 받는 시인이다. 먼저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브라우닝의 생애와 작품

로버트 브라우닝은 1812년 5월 7일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런던 교외의 캠버웰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였고 아버지로부터 헬라어와 라틴어의 기초를 배웠다. 1828년 16세 때 런던 대학에 입학하여 1년간 공부하였으나 그의 교육은 대부분 가정교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의 부친은 책을 좋아하는 교양인이었으며 그의 집의 서재에는 6천 여 권이 넘는 서적이 있었다고 한다. 12세 때 바이런을 읽고 14살 때 셸리의 시를 읽은 것이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특히 셸리의 무신론에 감화되어 모친의 종교를 버렸고, 셸리의『맵 여왕』(Queen Mab)을 읽고는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셸리의 영향아래서 “폴린”(Pauline)이라는 시를 1833년에 익명으로 써서 약간의 명성을 얻은 바도 있다. 이 작품은 형식면에서는 극적 독백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청년기 시인의 열정과 불안을 담고 있다. 이 작품으로 약간 호평을 받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브라우닝이 자신의 감정과 ‘강렬하고 병적인 자의식’을 드러내어 이기적으로 이용했다고 공격하였다. 이러한 밀의 비판은 브라우닝이 시에서 다시는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쓰겠다는 결심에 영향을 주었다. 1840년 28세 때 발표한 장편시 『소르델로』(Sordello)는 위대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내면의 요구와 세계의 요구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으로 인하여 그나마 있었던 명성이 완전히 무산되었다. 1841-46년까지 장시 『피파 지나간다』(Pippa Passes)를 써서 세상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1834년에는 러시아 총영사 조지 데 벤크하우젠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했다. 1838년과 1844년의 이탈리아 여행을 빼고는 1840년까지 런던의 캠버웰, 그 뒤부터 1846년까지는 런던의 해첨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다.

1845년 여류시인 엘리자베스 배렛(Elizabeth Barret)을 만났는데, 그녀는 그녀의 창작집인『시집』(Poems)(1844)에다 브라우닝을 칭송하는 시를 썼고, 브라우닝은 1845년에 이에 대한 고마움을 글로 표현하였다. 그들은 5월에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배렛은 여러 해 동안 병자로서 방에 갇혀 지냈으며 불치병으로 늘 누어만 있었다. 더구나 그녀의 아버지는 위압적이고 이기적이며 딸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했고 그녀 역시 아버지에게 의존했었다. 의사가 이탈리아 요양을 권했으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자, 그들은 규칙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만나다가 드디어 결혼할 결심을 하게 되었고, 1846년 9월 비밀리에 결혼하여 1주일 뒤에 이탈리아의 피사로 떠났다. 결혼 뒤에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휴가를 보낸 것을 빼고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주로 살았다. 아들 로버트가 태어난 뒤 1849년 브라우닝 부인의 사촌 존 케니언으로부터 1년에 100파운드씩 받았고, 그가 1856년에 죽자 1만 1,000파운드를 물려받긴 했지만 수입은 매우 적어서 살기가 몹시 어려웠었다.

그의 대표적 서정시집 『남자와 여자들』 (Man and Women)은 이 무렵에 나온 작품이다. 그러나 『남과 여』는 많이 팔리지도 않았고, 호평도 받지 못했다. 브라우닝은 이러한 반응 때문에 처음에는 실망을 느껴 다음 몇 해 동안 거의 시를 쓰지 않고 낮에는 스케치를 하거나 점토모형을 만들고 밤에는 사교 클럽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탈리아에서 현저히 회복되었던 브라우닝 부인의 건강도 마침내 나빠지기 시작했다. 1861년 6월 29일에 그녀는 남편의 품에 안겨 죽었다. 그해 가을에 브라우닝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런던에서는 먼저 아내가 쓴 『최후 시집』(Last Poems)의 출판을 위해 준비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들을 꺼렸으나 서서히 거리낌 없이 초대에 응했고 사교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1863년 새로운 시집을 출간했으나 여기에 “폴린”은 실리지 않았다. 뒤이은 시집 『등장인물』(Dramatis Personae, 1864)에는 『랍비 벤 에즈라』(Rabbi Ben Ezra) 등 이름 있는 시들이 실려 있으며, 제2판이 나오면서부터 폭넓은 인정을 받게 되었다. 1868-69년에 나온 가장 훌륭한 시집 『반지와 책』(The Ring and the Book)은 1698년 로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재판과정을 소재로 했다. 이 시집은 나오자마자 갈채를 받아 브라우닝은 당시 가장 주목받는 문인으로서 자리를 굳혔다. 그 뒤부터 런던 사교계의 초대가 쇄도했고 여름에는 친구들과 프랑스·스코틀랜드·스위스에서 지냈으며 1878년부터는 이탈리아에서 여름을 보냈다. 그 뒤로 20년간 시작에 온 힘을 다 쏟다가 1889년 베네치아에 있는 동안 감기에 걸려 몹시 앓다가 12월 12일에 죽었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그는 실리주의와 유물론을 배격하고 신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을 주장하였으며 형식으로는 탁월한 극적 독백을 주로 상용하였다.

인생을 사랑한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철두철미하게 인생을 노래한 시인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주로 자연을 노래한 워즈워드와 각각 남북의 자리에 서있다 할 수 있다. 그는 시인으로서 자연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그는 이탈리아의 풍경을 좋아했고 장년 이후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시정의 대부분을 인생을 위해 바쳤다. 인간의 생애, 특히 영혼의 역사에 그는 깊은 흥미를 가졌고, 그것을 폭넓게 묘출하였다. 그의 작품을 영혼의 역사가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인생을 열렬히 사랑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유전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공히 실무적인 사람들이었다. 실로 할아버지는 영국 은행의 중역으로서 꽤나 실력 있는 굴지의 실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인물이었고, 아버지는 문예를 좋아한 은행 실무가였다. 이와 같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가진 그로서 인생과 그 실제에 강한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그는 전적인 도시인이었다. 런던에서 태어났고 장년 이후에는 이탈리아에서 대부분 보냈지만, 그곳도 도시였다. 이런 도시적 환경이 그로 하여금 인생의 실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했다. 그밖에 그의 성격이 그를 인생 시인으로 만든 세 번째 이유가 된다. 그는 강건하고 철두철미한 남성적인 시인이었다. 그는 테니슨이나 워즈워드처럼 우울하고 여성적인 그런 일면을 전혀 갖고 있질 않았다. 그는 나쁜 것이 아닌 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즐기려고 한 보기 드문 현세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놀라울 만큼 강렬한 영혼의 불멸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내세의 신념도 갖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자연보다 인생을 열애했고 미래의 희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도공의 녹로와 물병

「랍비 벤 에즈라」는 로버트 브라우닝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극적인 독백으로 이루어진 시다. 이 시는 총 192행으로 이루어진 장시다. 이 시의 제목으로 채택된 벤 에즈라는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실재인물이다. 랍비 벤 에즈라는 유대인으로 탁월한 율법사였다. 1091년경 스페인에서 출생했으며 빈궁한 가운데 뼈를 깎는 면학으로 대학자가 되었다. 1140년, 유대인에 대한 박해 때문에 스페인을 떠나, 이탈리아, 아프리카, 페르시아, 인도, 프랑스, 영국 등지로 떠돌아다니며 저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신학자, 철학자, 의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및 시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그는 문법학자, 주해학자로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그의 구약성경 주해서는 독창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제 나라에서 쫓겨나 여러 나라로 유랑한 점에서 보면, 그의 생애는 단테의 그것에 견줄 만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조용히 받아들이면서, 지식에 대한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연구와 저작을 계속하다가 1168년 80세에 가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는 단테와 다르다.

브라우닝의 물질적 궁핍은 그의 일생동안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인생에 대해 비관하지 않았고, 그의 작품을 보면 의기소침한 분위기나 생의 권태나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브라우닝은 결코 공허한 상상을 갖고 이 시를 만들지 않고, 벤 에즈라의 사상을 철저히 연구한 후 그것을 시 속에 재현하였다. 그는 벤 에즈라의 인생관을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속에다 그 자신의 사상과 인생관을 짜 넣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죽음에 가까우면 사람은 적막한 감정을 느끼기 쉽고 젊은 날이 좋았다고 추억담을 늘어놓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과거만 회고하고 뒤를 돌아다보는 추억 속에 사는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사 벤 에즈라처럼 “우리의 때는 도공 되시는 주의 손 안에 있다”는 확신을 가슴에 품고 산다. 하나님은 청춘만 경륜한 것도 아니고 또한 노년만 경륜한 것도 아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부분만 보고 인생을 설계한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보고 길게 경륜하셨다. 그러니까 인생을 총체적으로 보는 사람은 결코 피가 끓고 힘이 왕성한 청춘만 최상이라 생각지 않고 영혼의 기념비를 소중하게 여기는 노년기도 경시하지 않는다. 청춘은 인생의 전체적 도정의 발단에 불과하므로, 그것은 부분적 진리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초년은 말년을 위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은 더욱 중요하다. 뒤의 테가 예쁘지 않으면 앞의 모습도 예쁠 수가 없다. 뒤 테는 인생의 흔적이요 발자취라 할 수 있다. 세상의 풍파가 아무리 거세도 바닷가의 자취는 어디엔가 반드시 남게 되어 있다.

물론 청년에게는 노년들에게 없는 특권이 있다. 그것이 바로 꿈도 많고 회의와 번민도 많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고생과 고뇌가 없다면 그것은 흙덩어리 같은 하등동물에 불과하다. 환락만을 추구하는 인생은 인간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한 것이므로 아무런 지각이 없는 미생물과 다를 바 없다. 배부른 새에게는 번민이 없고 포식한 짐승에게는 회의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번민이 있고 회의가 있다. 그것이 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징이요,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고통과 어려움을 뚫고 앞으로 전진 하는 데 인생의 가치가 있다.

우리는 흔히 ‘구불득고’(求不得苦)라는 말을 듣게 된다. 문자적으로 말하자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갖게 마련이고 무엇인가 찾고 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구하는 것을 다 얻을 수도 없고 우리가 세운 목적을 다 이룰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린 괴로워하기도 하고 실패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생을 전체적인 여로(旅路)로 보면 일시적인 실패도 성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믿음과 오른뺨을 맞고도 왼편 뺨을 내주는 겸손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은 유수와 같고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니 오늘을 즐기자’(carpe diem)고 하는 것은 바보들의 제의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공 되시는 하나님을 늘 경외하며 그가 잡고 돌리시는 녹로로써 명품 인생을 만들어 주실 것을 기구하며 살아야 한다. 여기서의 도공은 하나님, 흙덩어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돌아가는 인생살이와 그 삶의 때는 도공이 사용하는 녹로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생이라고 하는 녹로를 가지고 흙덩어리인 사람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물병도 만들고 화병도 만들며 술병도 만드는 것이다. 이 병은 일생에 걸쳐서 만들어지는 작품이므로 현재만을 보고 과거와 미래를 보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청춘만을 구가하고 현재의 향락만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의 수치일 뿐이다. 우리의 일생을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그 치밀한 작품계획을 믿는 사람은 도공이 잡고 돌리는 완성의 길을 따라 묵종하며 겸손하게 전진한다.

튼튼한 집을 지으려면 먼저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근본을 튼튼하게 하는 일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요지부동이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이란 하나님의 신묘한 인생 플랜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이런 신앙과 겸손이 없는 사람은 썩은 물고기처럼 사회의 탁류와 세파에 힘없이 떠내려간다. 그러나 그 근본정신이 산 사람은 산 물고기처럼 인생의 높은 이상과 사회의 큰 선을 향하여 용감하게 탁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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