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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역사를 통해 살펴 본 기독교 문화혁명 / 박진후 목사
작성일 : 13-11-27 11:32



프라하의 대통령궁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대통령궁 입구에는 엄청난 근육질을 자랑하는 두 개의 석상이 양 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한 쪽에는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무릎으로 누른 채 목에다 칼을 들이대고, 다른 한 쪽에서는 몽둥이로 내려치려고 한다. 석상을 보면서 체코인들의 힘과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언뜻 드는 생각으론 위에서 누르는 사람은 체코인들을, 아래서 겁을 먹은 사람은 주변 약소국일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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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이드의 말은 달랐다. 과거 오스트리아의 함스부르크가 체코를 지배했을 당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만든 조각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위에서 누르는 사람은 오스트리아인, 아래 굴욕당한 사람은 체코인이었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로 말하면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동상인 격이다. 굴욕적인 역사의 잔재라 당장 없앨 법도 한데, 이 석상은 수 백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 그것도 한 나라 권력의 심장부격인 대통령궁 입구 앞에서 말이다.

 

사실 독립 이후 당시 국민들도 동상을 없애려고 했단다. 그런데 철학자 출신인 당시 초대 대통령 마사릭이 백성들을 설득해서 동상을 그대로 놔두게 됐다. 동상을 볼 때마다 자신들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잊지 말자는 의도에서다. 지금도 체코 학생들은 이곳에서 조국의 아픈 역사를 배운다고 한다. 지도자의 통찰과 결단력도 대단하지만, 제안을 받아드린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조국의 치욕스러운 과거조차 반면교사로 삼아 역사교육의 도구로 삼은 체코인들의 문화수준은,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줄 아는 부패한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절대 따라가기 힘든 것이리라.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바츨라프 하벨

사실 체코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전체주의로부터 민주화를 일궈낸, 역사상 이례적인 사례를 남긴 국가이다. 우리가 잘 아는 벨벳혁명이 그것이다. 그 후 벨벳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혁명을 이룩한 모든 혁명을 비유하는 보통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당시 지도자가 바츨라프 하벨(Václav Havel)이었는데, 그는 극작가 출신으로서 오랫동안 공산 체제에 항거해온 지성인이었다. 저항의 자리에 섰던 인물이 정권의 핵심부로 들어가는 일은 간혹 있었지만, 저항운동을 한 지성인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것은 하벨의 처음이지 싶다.

 

지성인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들릴 듯싶다. 고등교육을 받아야 하고, 대학교수 출신 정도는 되어야 지성인이라는 단어에 어울릴만하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의 사고방식의 수준이다. 그러나 하벨은 제대로 고등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야말로 일류 대학을 졸업한 인물도 아니었으며, 소위 연줄이 있거나, 특정 후견인을 가졌던 잘나가는 극작가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삶의 의미를 날마다 성찰하고, 역사와 문화를 소중히 여기며, 불의에 대해서 저항할 줄 아는 지성인이었다. 오랫동안 전체주의 체제에 대하여 저항의 논리를 펴왔던 재야의 인사가 뜻하지 않게 어느 순간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다. 사실 취임 두 달 전만해도 반체제 인사로 구류되었던 그였으니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그를 받아드리는 체코인들은 누구 하나 가소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 경력이 없고 행정 경험이 없다고 해서 작가 출신 대통령을 허술히 여기지 않았다. 하긴 철학자 출신이 건국 대통령이 된 역사를 살펴본다면 극작가 출신이 대통령이 된 것도 체코인들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체코인들의 사상과 민족의식을 키워온 힘은 체코언어와 문화를 이끌었던 당시 작가들과 학자들에게서 나왔다. 이들은 그야말로 민족을 이끌고 간 정신적 지도자들이었던 셈이다. 이런 지성인들의 노력들이 있었기에 프라하가 당시 유럽의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감당했으리라.

 

하벨이 당시 전체주의 체제(정확히는 후기 전체주의)와 대항하면서 했던 말을 의미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러가지 권력의 도구에 의존하는 제도화된 수준에서 체제와 맞붙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전혀 다른 수준, 곧 인간의 의식과 양심의 수준, 실존의 수준에서 대결해야 합니다.” 하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의 변화였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타성에 젖은 무책임한 삶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거부할 수 있는 능동적인 의식수준의 삶이 있을 때, 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식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한 사람의 시민이 한 지역 전체를 변화시킬 힘이 생기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의 문화혁명

그렇다면 민족의 참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특별히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핍박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 21세기는 그야말로 세계관의 전쟁터이다. 20세기를 마지막으로 이념의 대립과 전쟁이 끝났다고는 하지만, 21세기로 들어서면서 또다시 새롭게 양분화 된 세계관의 대립이 나타났다. 바로 성경적 세계관과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의 대립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자세로 대립하려고 하기 보다는, 먼저 우리가 우리의 문화의식을 높이고, 세속화된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며, 스스로 성경적 실존이 되기 위해서 몸부림 쳐야 할 것이다. 스코트랜드의 모든 군함보다도 존낙스(John Knox)의 기도가 더 두렵다고 했던 영국 메리여왕의 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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