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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 (김명혁 교수)
작성일 : 17-08-07 10:32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면서 종교개혁자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기독교개혁신보)

고전 2:2, 3:7-12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복협회장)

 

우리들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면서 종교개혁자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인간화 되고 제도화 되고 물질화 되고 있던 로마 카톨릭 교회를 개혁하여 “복음”의 핵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모든 정성을 다 쏟아 바치면서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의 모토들을 내 세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직 성경”보다 “오직 믿음”보다 “오직 은혜”보다 “오직 그리스도”보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보다 귀중한 모토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물려받아 몸과 마음과 삶에 지녀야 할 너무너무 귀중한 모토들과 고백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귀중한 모토들이라고 해도 “오직”을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강조하면서 “다른” 면을 무시하고 부정하는 배타적인 입장은 조심하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성경”을 관념적으로만 고백할 뿐 영적이고 생활적인 관점에서 무시하는 잘못을 범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믿음”을 말로만 고백할 뿐 삶을 무시하는 잘못을 범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신자들의 “믿음”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이고 “사랑”과 “착함”의 삶에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과 함께 “사랑”과 “섬김”을 너무너무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25: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사도 바울은 “사랑”을 무시하는 “믿음”은 아무 쓸 데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고전 13:2). “오직 은혜”는 너무 귀중한 모토이지만 “오직 은혜”를 강조하면서 인간의 책임을 간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강조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자기의 “책임”을 너무 강조한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사도 바울이 강조한 너무 귀중한 모토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성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일반 은총을 무시하고 성자 그리스도의 구속론으로 치우치는 소위 “그리스도 일원론”(Christo monism)이 생기게도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은 아무리 강조해도 잘못이 없는 너무 귀중한 신앙의 모토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언제나 잘못을 범하는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교황이나 목회자가 영광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잘못 가르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손양원 목사님처럼 자기가 높임이나 영광을 받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는 것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면서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자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배타적인 독선이 아닌 “포용적인” “연합”과 “일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죄인들의 구원과 함께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사도 바울이 지적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과거의 역사를 전적으로 배타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올바른 신앙적인 전통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루터는 버나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칼빈은 어거스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종교개혁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소신을 분명하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다른 종교개혁주의자들을 부정적으로 비판하면서 투쟁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조금씩 다른 주장을 했던 종교개혁자들을 각각 다른 입장에서 존중하며 배우려고 하되 “쏠라 루터” “쏠라 칼빈” “쏠라 웨슬레” “쏠라 쯔윙글리” 라는 모토를 내 세우면서 서로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전적인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서로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연합”과 “협력”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포용적인”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하고 있는 손인웅 목사님은 지난 2017 4 14일 “종교개혁의 모토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이해” 라는 주제로 모인 한복협 월례모임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에 대한 평가와 이해” 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면서 교회의 일치와 평화와 하나됨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교회의 일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최고의 방법이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라는 개혁자들의 명제는 교회의 분열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의 회복과 교회의 일치에 의한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을 위해 항상 자기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미로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하지 못하는 분열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케 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만들기 때문에 장차 하나님 심판대 앞에서 책망 받을 엄청난 죄를 범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일치를 이루어 교회의 평화가 세상의 평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한 마디 더 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물론 오늘의 세계교회가 지향하는 “종교개혁”은 “십자가에 나타난 복음에로의 회복”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십자가 복음에로의 회복”을 이미 사도 바울이 시도했고 평생토록 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3:7-12).

사실 루터와 칼빈은 “오직 성경”의 모토를 내 세우면서 “그리스도 중심적인” 즉 “십자 중심적인” 성경관을 내 세웠습니다. “나는 고백한다. 내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덜 발견하게 될 때 나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를 더 많이 발견하게 될 때 나는 결코 빈곤해지지 않는다. 참된 사도의 직무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그의 직무를 전파하는 일이다.(마르틴 루터). “요컨대 전체 성경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아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다른 구절에서 자기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매우 적절한 말이다. 성경을 읽는 우리의 최대의 목표는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에 도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요한 칼빈).

저는 “십자가에 나타난 복음”의 특성을 세 가지로 이해하곤 합니다. 즉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의 절정을 몸에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 구원을 위한 성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극도의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을 지니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십자가에 나타난 복음에로의 회복”인데 그것은 주님께서 지니셨던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을 몸에 지니고, 세상의 부요함과 지혜로움과 강함과 악함과 자기 중심적인 이기주의와 민족주의를 모두 벗어버리고, 죄인들 구원에 전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주님께서 짊어지셨던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을 몸에 지니고 죄인들 구원에 전력하는 삶과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짊어지셨던가난고난슬픔아픔죽음을 몸에 지니고 땅끝에서 살고 있는 모든 종류의 죄인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펴는데 전력을 다하는 삶과 사역과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십자가에 나타난 복음의 특성들을 몸에 지니고 살다가 죽으신 분들이 스데반 집사와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와 성 프랜시스와 토마스 선교사와 길선주 목사님과 이기풍 목사님과 최권능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이성봉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속화와 인간화와 분열과 분쟁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자들이 추구했던 종교개혁의 이념들과 그리고 무엇보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이 추구했던 십자가 복음의 특성들을 몸에 지니고 새로운 복음적인 삶을 조금이라도 살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을 몸에 지니고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여!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셔서 엎드려 울면서 회개하게 하시고 서로 끌어 안고 화해와 평화와 하나됨을 이루게 하시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몸에 지니셨던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을 몸에 지니고 땅끝에서 살고 있는 모든 종류의 죄인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구원”의 손길을 펴는데 전력을 다하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음을 죽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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