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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7-07 09:56
성찬식은 얼마나 자주 하는 게 좋을까요?
 글쓴이 : 所陽 (121.♡.10.184)
 
성찬식은 얼마나 자주 하는 것이 좋을런지요?
칼빈은 매주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까지 한 것으로 알지만, 한국교회는 1년에 두어번 혹은 네번 정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주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교수님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늘 감사합니다. 

所陽 (121.♡.10.184) 2016-07-08 (금) 13:41

매주일 성찬식을 해야 하는가?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요즈음 한국에서 성찬식을 자주 해야 한다는 소리가 많다. 매주일 성찬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빈도 매주일 성찬식을 하고 싶었으나 제네바 의회가 반대해서 못했으니 우리는 칼빈의 원래 뜻대로 매주 성찬식을 거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말씀 예전>과 <성례 예전>이 함께 하는 <통합 예전>을 실시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 온전한 <공예배>가 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는 매주일 반드시 성찬식을 거행해야만 하는 것일까? 지금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해 오던 연 2회 성찬식은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성찬식이 없는 예배는 온전하지 못한 예배란 말인가? 한국교회는 여태껏 잘못된 예배를 드렸단 말인가? 아니, 1년에 네 번만 성찬식을 행한 화란개혁교회와 제네바교회도 잘못된 예배를 드렸단 밀인가? 이 문제에 대해 차근차근히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우선, 매주일 성찬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있지만(눅 22:19; 고전 11:24), 1년에 몇 회를 행하란 말씀은 없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성찬식을 행했다는 사실과 성찬의 의미(떡과 잔의 의미)에 대해서는 말하지만(마 26:26-29; 막 14:22-25), 몇 회 하라는 말은 없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나아가서 신약성경 어디에도 얼마나 자주 행하라는 말씀은 없다.

2. 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아폴로기아](Apologia)에 보면 매주일 모여서 예배 중에 성찬을 행했다는 기록이 처음으로 나온다(I,67,5). [아폴로기아]는 주후 150년경에 저작한 문서이다. 따라서 이것이 성경이 될 수는 없다. 고대교회에 매주일 또는 매일 또는 매주 토요일과 주일에 모여 성찬식을 행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규범이 될 수는 없다. 고대교회는 여러 면에서 발전도 있었지만 또한 타락도 많았다. 이미 2세기 초반부터 변질과 타락이 나타난다. 어쨌든 우리는 고대교회의 모습을 표준으로 삼으면 안 되며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표준이 된다. 따라서 고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나 고대교회를 본받아 매주일 성찬식을 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올바른 주장이 아니다.

3. 칼빈이 매주일 성찬식을 행하기를 원했다는 것도 기준이 될 수 없다. 물론 칼빈은 "적어도 매주일에 한 번" 성찬식을 행하기 원했지만([기독교 강요] IV,xvii,46), 그것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칼빈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칼빈이 성경은 아니기 때문이다. 칼빈이 그 성경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사도행전 2장 42절 -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 은 사실 '성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칼빈은 여기의 '떡을 떼며'를 성찬으로 보지만, 이것은 성찬이 아니라 애찬으로 보아야 옳다. 왜냐하면 원어로 살펴볼 때 '사도의 가르침'과 '교제, 떡을 뗌'과 '기도' 사이에는 접속사 '카이'(그리고) 가 있지만 '교제'와 '떡을 뗌' 사이에는 '카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쉼표(,)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 둘은 밀접하게 관련된 일임을 나타내 준다. 즉, '교제'(코이노니아)의 그 구체적 방법이 '떡을 떼는 것'(식사)이었음을 나타내 준다. 따라서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은 1) 사도들의 가르침; 2) 교제(즉 공동식사); 3) 기도, 이것들에 전혀 힘쓰는 것이었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오늘날 서양교회들처럼 단지 예배만 드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식사하는 것을 통하여 교제를 실천했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것을 '애찬'(아가페)이라고 부른다. '교찬'(코이노니아)이라고 불렀으면 더 좋을 뻔했지만 '애찬'도 좋다. 어쨌든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공동식사(애찬)를 통해 성도들 상호간의 교제와 가난한 자 구제를 힘썼으며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였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1) 사도들의 가르침, 2) 교제 곧 떡을 뗌, 3) 기도, 이렇게 셋으로 나누는 것이 문법적으로 옳으며, 칼빈이나 많은 서양 신학자들처럼 1) 사도들의 가르침, 2) 교제, 3) 떡을 뗌(성찬), 4) 기도, 이렇게 넷으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사도행전 2장 46절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한다. 여기의 '떡을 떼는 것'에 대해 칼빈은, 이 구절에서는 (42절과 달리) 성찬이 아니라 보통의 식사로 본다. 이 점에서는 이것을 '성찬'으로 보는 서양 주석가들보다는 훨씬 낫지만, 42절의 '떡을 뗌'과 46절의 '떡을 뗌'을 서로 다르게 나누어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42절과 46절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같은 모습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46절은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하여 '떡을 떼는 것'이 곧 '음식을 먹는 것'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떡을 떼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식사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표현으로 많이 나타난다(마 14:19; 15:36; 막 6:41; 8:6, 19; 눅 24:30; 행 27:35). 함께 식사할 때에 빵을 뜯어서 나눠주는 것에서 이런 표현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성찬'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초대교회는 옛날 한국교회처럼 함께 식사하는 것을 통해 사랑의 교제를 실천하였다. 그러나 이런 '애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평이 생기고 문제가 생겨서 주후 363년에 개최된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그래서 서양교회에서 '애찬'은 없어지고 의식적인 '성찬'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서양교회는 예배 후에 식사가 없다. 예배가 끝나면 다 집에 간다. 미국에는 간혹 예배 후에 커피와 과자를 주는 교회가 있기는 하지만 예외적이다. 그래서 서양교회는 메마르고 친밀한 교제가 없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대개 예배 후에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교제를 나눈다. 중국의 어느 가정교회에 가니까 주일 오전 7시에 예배를 드리는데 8시 반에 예배가 끝나자 온 교인이 다 함께 아침식사를 하였다. 이처럼 한국교회와 중국교회는 식사를 통한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것은 옛날에 초대교회가 행했던 모습이다. 그러나 서양교회는 363년 이후로 '애찬'이 없어지고 '성찬'만 남아서 천년 이상을 지내다 보니 사도행전을 읽어도 초대교회의 '애찬'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찬'으로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칼빈도 예외는 아니다.

4. 고린도교회는 아마도 매주일 또는 매일 모여서 성찬식을 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주의 만찬'이라고 되어 있는데(고전 11:20), 이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성찬'이다. 왜냐하면 23절 이하의 문맥이 분명히 성찬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는 모일 때에 자기 음식을 가지고 와서 먹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부자들이 먼저 와서 음식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들이 늦게 오자 먹을 것이 없게 되었다(아마 부자들이 넉넉하게 가지고 와서 가난한 자들과 나누어 먹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자 가난한 자들이 불평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권면한다(33절). 시장하면 집에서 먹으라고 한다(34절). 이것은 이들의 모임이 단순한 '보통식사'가 아니라 사랑의 교제(가난한 자 구제 포함)가 있는 '성찬'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것은 빵과 포도주만 조금 돌리는 '성찬'이 아니라 실제로 음식을 먹고 마시는 '애찬'이 함께하는 '성찬'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행한 것은 오늘날과 같은 단순한 성찬 의식이 아니라 실제 식사였다. 성도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식사이며 가난한 자 구제가 들어 있는 식사 곧 '애찬'(아가페)이었다. 그런데 이 '애찬'을 나눌 때에 예수님의 죽으심을 생각하고 기념하면서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애찬'과 '성찬'이 함께하는 식사였다. 예수님이 세우신 성찬 제도도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그 식사 후반부에 세우신 제도였다(눅 22:14-20). 실제로 나물과 빵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포도주를 여러 잔 마시는 가운데 식사 끝부분에 와서 성찬식을 행하신 것이다. 그러나 363년의 라오디게아 회의 이후로 서양교회에서 '애찬'은 사라지고 의식적인 '성찬'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성찬' 회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애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고대교회의 모습을 본받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왜 '애찬'은 빼고 363년 이후의 의식적인 '성찬'만 말하는지 모르겠다. 마치 중세 가톨릭교회가 날마다 행하던 '미사'를 교리만 바로 잡아서 '성찬'으로 바꾸어 자주 행하기만 하면 되는 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애찬'은 쏙 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와 고대교회가 363년 이전에 행하던 '성찬'은 '애찬'과 함께 하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빵과 포도주(와 물)을 충분히 먹는 공동식사였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고린도교회의 식사는 문제가 많았다. 교회 성도들 사이에 불평이 생기고 분쟁이 생겼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성찬의 의미를 설명하고 서로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매주 성찬식을 행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매주일이든 매일이든 얼마나 자주 하라는 말은 없다.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교정해 주기는 하였지만 성찬식의 횟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린도교회가 매주 (또는 매일) 행하였으니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따라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것은 옛날의 사실을 그대로 모방하는 잘못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베드로가 강하게 질책하고 정죄했으니(행 5:1-11) 오늘날 우리도 그대로 따라해야 하겠는가? 아니다. 옛날에 있었던 '사실들'이 자동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규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서술'과 '명령'은 구별되어야 한다. '명령'은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규범이지만 '서술'은 우리가 알고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우리는 고린도교회 외의 다른 교회들이 이처럼 매주일 성찬식을 행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바울이 처음에 복음을 전한 유대교 회당에는 성찬식이 없었다. 유대인들은 1년에 한 차례 유월절 절기를 지켰을 뿐이다.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분리되어 나와서 따로 모일 때에 아마도 예루살렘교회처럼 가정에서 '애찬'을 나누었을 가능성이 크다. 예배 후에 자연히 함께 식사하며 교제를 나누었을 것이다. 이때 아마도 찬송과 (합심)기도를 함께 했을 것이며, 또한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간단히 성찬식을 행했을 수 있다. '애찬'과 '성찬'이 합쳐진 형태의 식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중국교회에서 오전예배 후에 모여서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때 아마도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일을 했을 것이다. 이러던 것이 점차 예배 중에 간단히 빵과 잔을 나누는 순서로 들어오고, 중세에 와서는 아주 형식적으로 성체(와 포도주)만 받아먹는 의식으로 변했을 것이다.

5. 칼빈은 [갈리아 신앙고백] 초판 서문에서, 우리는 '교리'(doctrine)와 '마음'(mind)의 일치는 추구해야 하지만 '의식'(儀式, ceremonies)에 있어서의 완전한 일치를 고집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허용하신 것들에 있어서 건덕적이지 못한 노예적 일치성을 추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정에 서서 우리 생의 모든 것을 회계하게 될 때에 우리를 심문하실 것은 의식(儀式)의 문제나 외적 일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합당하게 사용했는가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곧 덕(德)을 세우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관심과 노력은 덕을 세우는데 사용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진실한 경건과 거짓이 없는 성결한 삶이라고 한다(cf. W. J. Bouwsma, John Calvin, New York/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p.224).

칼빈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 외에는 관용하는 편을 택하였다. 칼빈은 제네바의 예배의식에 다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거기에 순응하였다. 제네바는 원래 1년에 세 번 절기 때만 성찬식을 가졌으나 칼빈은 매달 행하기를 원하였다([기독교 강요]에서는 적어도 매주에 한 번). 그러나 제네바 사람들이 이를 원치 아니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양보하였다(cf. E. Doumergue, Calvijn in het strijdperk, tr. W. F. A. Winckel, Kampen: De Groot Goudriaan, 1986, p.407). 그래서 칼빈은 제네바에서 1년에 네 번(성탄절, 부활절, 오순절, 추수절) 성찬식을 거행하였다. 화란개혁교회는 1년에 네 번(분기별로) 성찬식을 거행한다. 한국장로교회는 전통적으로 1년에 두 번 거행해 왔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칼빈은 성찬식 횟수를 중요한 본질적인 문제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일 매주일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요 중요한 핵심 진리였다면 결코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목숨을 걸고서라도 끝까지 싸워서 쟁취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제네바 사람들의 요구에 순응하여 1년에 네 번 시행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대신에 거행할 때마다 철저하게 교육하고 점검하는 것으로 보완하였다. 이 사실은 오늘날 한국의 어떤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칼빈이 성찬식 횟수를 그렇게 중요한 본질적인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화란개혁교회도 1년에 네 번 성찬식을 거행하는데,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성찬식 횟수가 적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이들이 오늘날 한국의 신학자들보다 무지해서 그런 것일까?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칼빈과 마찬가지로 성찬식의 횟수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성찬식은 중요하지만 횟수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성찬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성경적 근거로 제시하는 게 사도행전 2장 42절인데,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는 이 구절을 오해하였다(오늘날 서양 신학자들 다수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매주일 성찬식을 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성찬식이 없는 예배는 온전하지 못한 예배라는 주장도 잘못이다. 만일 성찬이 없는 예배는 '공예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한국교회는 1년에 두 차례 외에는 다 공예배 아닌 예배를 드렸단 것인가? 화란개혁교회도 1년에 네 번만 공예배를 드리고 나머지는 다 공예배 아닌 예배를 드렸단 말인가?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도 1년에 네 번 외에는 다 잘못된 예배를 드렸단 말인가?

우리는 유명한 신학자들의 말만 따르지 말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유명한 신학자도 성경을 잘못 이해했을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완전하지 않고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칼빈도 마찬가지다. 칼빈이 매주일 성찬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고대교회의 관행들 외에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그러나 고대교회는 발전만 한 것이 아니라 타락도 했다. 2세기부터 벌써 권위주의, 제도주의가 나타나며 금욕주의, 율법주의 등의 모습이 나타난다.

따라서 고대교회는 우리의 규범이 될 수 없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이 된다. 그런데 칼빈이 옳다고 생각한 성경 해석이 사실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사도행전 2장 42절이 그 중 하나이다. 이처럼 칼빈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제네바 의회가 옳을 수도 있다. 어떤 때는 후대의 개혁교회가 더 옳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의 표준은 오직 성경이며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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