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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24 13:17
발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민 22-24)
 글쓴이 : 우비피 (121.♡.69.236)
 
민수기 22장부터 24장에서 등장하고 민수기 31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발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신하들을 보내 발람을 데려오게 할 때에 발람은 그들을 유숙하게 하고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민 22:8)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뜻을 구하고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자(22:12) 발람이 그들을 돌려보냅니다.

발락이 한 번 더 신하들을 보내어 금과 은으로 그를 꾀어도 그는 '그 집에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22:18)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유숙하게 하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말씀하신대로 갔습니다.

이후 발락이 저주하라고 할 때에도 그는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께서 주시는 대로 말씀했고 (이스라엘을 축복했고), 그 뒤에 있는 3번의 예언도 모두 그렇게 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영까지 받았습니다.(민 24:2)

하나님을 '여호와 내 하나님'으로 고백하고(민22:18) 여호와의 말씀대로 따라가지 않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따라가고, 여호와께서 지키시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여호와의 뜻대로 축복한 그가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손에 죽임을 당하잖습니까?(31:8)

제가 읽는 성경의 주석에는 발람이 '이방의 점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부분인데 민수기 25장에서 이스라엘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을 시작한 것도 발람이 음모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본문 하단의 주석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시도한 집요한 노력이 실패로 끝났을 때, 메소보다미아의 점쟁이 발람은 자신을 고용한 주인을 위해 한 가지 교활한 제안을 했다. 그것은 젊은 모압 여자를 보내서 이스라엘 남자들은 유혹하고,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이끄는 것이었다.)

1.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긴 발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2.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대로 가지 않고, 따라가고, 말하고, 물러갔던 발람은 악한 사람인가요?
3. 이스라엘의 손에 의해서 죽은 그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4. 말씀드린 주석의 해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所陽 (182.♡.41.230) 2014-03-26 (수) 11:21
복잡한 문제에 대한 질문을 간결하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긴 발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긴 발람”이란 말이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앞에서 주석을 참고하신대로 발람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점쟁이 혹은 주술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수 13:22).물론 주석가들 가운데는 발람이 밧단아람에서 가까운 브돌에서 왔기 때문에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가 있습니다(Gispen). 그러나 족장시대에서 적어도 사백오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곳에 여호와에 대한 신앙이 남아있었다고 보기를 어려울 것입니다. 그가 이방인 주술사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하고 그에 대한 순종을 보여주는 것은 독자에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22:8). 중요한 것은 발람이 여호와를 만나기 전에 이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메소포타미아 브돌에서 온 예언자로서 영험이 있기로(22:6) 명성이 높았지만 여호와를 섬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는 발락 앞에서 그가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을 뿐입니다. 그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18절)라고 언약의 자녀처럼 말한 것도 그의 술책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언급하면서 그가 하는 말을 잘 살펴보면 그가 정말 뛰어난 술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람은 특별한 영험을 지닌 능력있는 이방 선지자였지만 신들의 지시가 없이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이너미즘(자연에 초자연적인 능력이 편재해 있다고 믿는 역동설)이겠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려는 그의 행동은 저주를 청탁한 사람들에게 신뢰는 주었을 것입니다(22:8). 모압 사람들이 볼 때 실제로 신의 지시를 받고 또 그의 능력을 덧입는 것처럼 보이도록 말입니다. 발람이 발락을 만났을 때 “내가 오기는 하였으나 무엇을 임의로 말할 능력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시는 말씀 그것을 말할 뿐이니이다”(38절). 이 말 자체는 개혁신앙의 핵심을 표현해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 하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자기 방어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예기치 않게 돌아갈 때는 그의 신에게 그 책임을 돌릴 수 있는 방책이 됩니다. 발람은 그 말로써 자신의 실수를 미리 방어하고 있는 셈입니다. 계속되는 발람의 행동은 물질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관철시킬 가능성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대로 가지 않고, 따라가고, 말하고, 물러갔던 발람은 악한 사람인가요?



이 질문도 앞의 질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고 하는 것은 그의 교묘한 술책이자 자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그는 그 날 밤에 발락에게 가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하게 하신 이유는 “그들은 복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22:12). 발락에게도 마치 자기의 결정에 의해서 가지 않는 것처럼 전달되었습니다.그래서 그의 말과 행동은 항상 자신의 숨겨진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비록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서 죽음의 위협을 느꼈지만 그의 행동은 재물에 미련을 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은 그것을 “불의의 삯”이라고 했습니다(벧후 2:15; 유 11). 왜냐하면 그는 자연현상을 신격화해서 섬기는 이방신을 섬기는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방인들은 신들을 조정해서 복을 얻어낸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람이 제사를 지내고 신탁을 받으려고 언덕에 올라가는 모든 행위가 혹시 자기에게 우호적인 신탁 내지는 징조를 볼 것을 기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반복될수록 하나님의 계시는 분명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23:23)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은 발람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성령의 역사는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믿음과 인격의 변화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발람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강력한 주권 가운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신23:4-5; 수 24:10; 느 13:2). 그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간 것을 믿음의 행위로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아야 할 것과 그 이유는 처음부터 그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은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면 이 일을 진행시키지 말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전체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편의상 ‘발람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이것은 모압평지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미 6:5). 이것은 출애굽 역사가 ‘바로의 이야기’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3. 이스라엘의 손에 의해서 죽은 그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이 질문도 다른 관점에서 발람의 행동을 보고 이해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발람이 발락과 작별하고 돌아갔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그를 잊었지만 성경은 다시 그를 언급한 것이 놀랍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의 남자를 다 죽였습니다(31:7).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사한 다섯 명의 미디안 왕의 명단과 함께 발람의 이름이 언급된 것입니다. 발람은 발락과 헤어진 후 곧장 브돌로 돌아가지 않고 미디안의 진영에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서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어떻게 죽음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발람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저주를 했는지 축복을 했는지 모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그것을 알았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를 본 적도 없습니다. 더욱이 그는 미디안 사람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스라엘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그가 칼에 죽었다는 것 외에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모압의 왕들을 죽이던 중에 발람도 죽인 것처럼 보입니다(수 13:22). 그러나 모세는 발람의 죄를 알았고 그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31:16).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서 행하시는 그분의 일을 봐야 합니다. 발람의 행위와 최후에 대해서 감상적인 태도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신약성경은 성도가 따라서는 안 되는 세 가지 길 가운데 발람의 길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유 11).

4. 말씀드린 주석의 해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누구의 주석인지 안다면 더 잘 평가할 수 있을 텐데 출처가 없고 또 전체 설명이 아니기 때문에 그 해석에 대해서 명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주석의 전제가 다를 수 있고, 또 결론을 다르게 끌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일단 그 부분만 보고 평가할 때 그 주석은 이 사건에 대한 균형있는 성경적 관점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신대학교 구약학
신득일 교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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