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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쪽 ‘마게도냐’의 부름 (이병길 선교사)
작성일 : 17-06-02 13:27
<특별기고>중국 서쪽 ‘마게도냐’의 부름
  • 이병길


21세기 ‘중국의 꿈’ 길 서진(西進) 선교: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서진 정책을 중심으로-

이병길 목사

 

글순서

중국의 서진전략/

▶중국 서쪽 ‘마게도냐’의 부름/

기독교 선교 ‘땅 끝까지’의 최후 주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운동/

BTJM의 10/40의 창 선교전략/

가장 비참한 상황/

세계 선교 국면의 변환/

중국 교회의 각성/

마무리 

 

중국 서쪽 ‘마게도냐’의 부름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이 본 환상은 기독교의 서진 선교 노정을 생각하게 한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16:9)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는 지정학적으로 서쪽이다. 사도행전 역사는 기독교 복음이 아시아에서 서진한 것을 보여주며, 그 서진 선교가 다시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전 베이징 주재 영국 외교관 토니 램버트(Tony Lambert)는 『중국교회 그 놀라운 성장』(China's Christian millions, 2006)에서 ‘이제 우리는 세계사에서 가장 큰 부흥(the biggest revival in world history)이 무엇인지 보고 있다’라고 서술했다. 지금 ‘세계사에서 가장 큰 부흥’이 중국에서 서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부흥은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 교회의 부흥 한가운데서 발전했다. 서진 선교운동의 연원은 1920년대와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가정-1920년대

1921년 중국 산둥성(山東省) 일대의 여러 기독교 단체들은 중국 서부지역에 밀집한 무슬림 선교를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특기할만한 단체가 바로 1920년대 오순절(Pentecostalism) 교파의 중국 토착 교회인 ‘예수가정’(耶蘇家庭, Jesus Family, 혹은 ‘예수가족’)이다. ‘예수가정’은 사도행전 제2장에 기록된 처음 교회의 오순절 신앙생활을 롤모델로 삼아 희생, 포기, 빈곤, 고통, 죽음 등 다섯 가지 생활 내용으로써 그리스도에게 헌신했으며,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영적 삶에서 ‘성령 충만’, ‘방언’, ‘복음성가’, ‘신유의 기적’ 등은 예수가정의 특징이며, 그래서 일명 ‘영은파’(靈恩派)라고 한다.

예수가정: 창시자는 산둥성 타이안시(泰安市) 출신의 징디안잉(敬奠瀛,  1890-1953), 그는 기독교의 중국 토착 교회의 원조이기도 하다. 1950년대 징디안잉은 중국 공산당의 혹독한 박해 가운데서 순교했다. 징디안잉은 1912년 당시 미국 감리교 타이안 선교부가 경영하던 쉐이잉(萃英) 중학교에 입학하여 수학하던 중 노라 딜렌벡(林美丽, Nora N. Dillenbeck) 여선교사 등의 영향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1921년 샹산(乡山) 동타이안(東泰安) 마야(馬壓)에 ‘경도신용저축사’(圣徒信用储蓄社)를 설립하고, 후에 사도행전 제2장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예수가정’이라고 이름을 변경했다. 1948년 ‘예수가정’은 127개 처로 증가했으며, 1951년 전체 신도 수는 381명, 그러나 1952년 중국 공산당은 징디안잉을 투옥시키고 ‘예수가정’을 해산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 통제를 위해 이른바 〈삼자애국운동〉(三自運動; TSPM) 선언에 동의를 강요했고, 징디안잉 역시 서명을 거부할 수 없었다. 1950년 삼자선언에 서명한 일단의 1,500 가운데 예수가정의 교인들이 381명이 포함되었다.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징디안잉 자신이 의료 지원단을 조직하여 인민해방군에 배속시켜 참전시켰다. 그러나 후에 징디안잉은 공산당에게 숙청 대상자로 몰려 1952년 10월 10년 형을 선고받고, 산시 성의 시안(長安) 감옥에서 복역 중, 1957년 8월31일 67세에 옥사(獄死)했다.(佳美之處) 예수가정의 전도 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며, 특히 중국 서쪽의 무슬림을 향한 선교 열정이 남달랐다.

북서영공단: 예수가정의 내분에서 등장한 새로운 ‘북서영공단’(西北靈工團, NSM, the Northwest Spiritual Movement, 이하 NSM)은 1940년대 초 산둥성(昌邑縣) 출신의 장구촨(張谷泉, 1920-1956) 목사가 조직, 예수가정을 공동체의 원형으로 삼았다. 이 단체는 행정 구조에서 자유로웠고, 중국 북서쪽 지역을 여행하면서 한족(漢族) 위주로 선교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1950년 신장(新疆) 정부는 이 단체를 해체하고, 장구촨 목사를 체포, 그 후 죽었다.

당시 중국 북서쪽 신장 선교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중국 교회의 두 선교 단체는 NSM과 BJEB(the Back to Jerusalem Evangelitic Band), 다른 하나는 ‘도처를 위한 전도단’(遍傳福音團, the Chinese Christian Preach the Gospel Everywhere Band)이다.

NSM은 중국 서쪽의 위구르(维吾尔), 후이족(回族), 카자크족(哈萨克族)을 비롯한 다른 소수민족에게 선교하여 그들의 영혼이 새로워지는 변화를 일으켰다. 예수가정, 북서 영적운동,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운동은 1940년대에 중국 서쪽 지역 선교에 헌신한 대표적인 중국 교회의 선교단체다. 특히 BTJ는 북서성경학원을 기반으로 발전한 선교단체다.

예수가정의 창시자 징디안잉이 옥사한 후 BTJM은 중국 동쪽에서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이 있는 서쪽 방향, 즉 종교적 박해지역인 불교, 무슬림, 힌두교 지역의 미전도 복음화에 대한 중국 가정 교회가 결단했던 선교 목표이다.

‘예수가정’은 중국 농촌과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이들은 특히 사도행전에 기록된 처음 교회의 삶을 본받아 희생, 가난, 무소유, 수고, 순교를 생활 지침으로 삼아 중국 중·서·북 지역인 신장, 내이멍꾸(內蒙古), 시짱(西藏), 쓰촨(四川), 칭하이(青海), 깐수(甘肅), 그리고 닝샤(寧夏)와 같은 오지(奧地) 선교에 헌신했으며, 중국 변방으로는 아프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시리아, 터키, 팔레스틴 복음화를 선교의 목표로 삼았다.

북서장정: BTJM은 1950년대에 중국 서부 지역으로 파고들면서 엄청난 박해에 부딪혀야 했다. 많은 신도들이 채포되거나 개인적 불이익을 당했으며, 그들 지도자 중 랴오닝성(遼寧省) 선양(瀋陽) 출신의 짜오시먼(趙西門, 1918-2001; 원명 趙海震)은 31년 간 감옥 생활을 했다. 1949년 5월2일, 중국 국·공(國民黨·共産黨) 내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당시, 짜오시먼은 부인 운무링(文沐靈)을 비롯한 일행 4명과 함께 신장 선교사로 파송되었고, 그들은 ‘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为主舍命)는 각오로 장강(長江)에서 신장의 하미(哈密)까지 약1만 리의 길을 석 달 반인 105일간을 5개 성(江蘇、安徽、河南、陜西、甘肅)과 장강과 황하(黃河) 등 3개강을 건너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선교사로 떠나기 전날 그들에게 주어진 성경은 신명기32:10~11절의 말씀이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북서성경학원-1940년대

돌이켜보면 그 놀라운 역사는 1943년 신장(新疆), 깐수(甘肅), 닝샤(寧夏), 그리고 중국 북서쪽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그 놀라운 역사의 진원지는 바로 중국 산시성 펑샹셴(鳳翔縣)에 있었던 북서성경연구소(Northwest Bible Institute), 즉 현재 타이완 가오슝(高雄)의 성광신학원(聖光神學院)의 전신이다. 북서성경연구소의 전신은 원래 1910년 허난성(河南省) 개봉((開封)에 설립된 중국 감리교 소속의 ‘개봉성경학교’(開封聖經學校, Free Methodist Kaifeng Bible School)이다.

개봉성경학교는 1919년 중국 내지회 설립자 허드슨 테일러(J. H. Taylor, 1832-1905) 선교사의 손자(嫡孫) 제임스 테일러(戴永冕, James H. Taylor II, 1894-1978)와 그의 아내 앨리스(愛麗絲, Alice E. Hayes) 선교사 부부가 협력한 가운데 발전의 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중·일(中日) 전쟁(1937-1945) 당시 중국 내지회가 산시 성 펑샹셴(鳳翔縣)으로 이전함에 따라 학원도 함께 이전하면서 명칭을 ‘북서성경학원’으로 바꿨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된 후 성경학교는 폐쇄되고, 1955년 9월 타이완 가오슝에서 다시 복교되어 제임스 H. 허드슨 2세가 원장을 맡았다. 그 후 1960년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4대손 제임스 H. 테일러 3세 (戴紹曾, James Hudson Taylor III, 1929-2009) 목사가 교장에 취임했다.(聖光院史)

북서성경학원 설립의 취지와 목적은 중국 북서부에 위치한 이슬람권 선교였다.

1943년 5월23일 북서성경학원 부원장 마크마(麥馬可, 1913-2008, Mark Ma), 신장의 난장(南疆) 선교의 한인(漢人) 첫 선교사 짜오마이쟈(趙麥加, 1919-2007), 허언쩡(何恩證) 부부 등이 협력하여 ‘중국기독도전도단’(中國基督徒遍傳福音團)을 정식으로 조직했다. 이 조직은 마태복음 24:14절의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這天國的福音要傳遍天下,對萬民作見證,然後末期才來到)는 성경구절에 근거한다. 성경 구절에 담겨있는 선교의 종말성을 고려하여 선교사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전도단’(Back to Jerusalem Evangelistic band)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1947년 3월, 이 전도단이 북서성경학교 학생 5명을 파송했으니, 그들 일행은 1948년 9월에 신장 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에 도착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전도단’(BJEB), 예수가정을 비롯한 많은 중국 교회 선교 단체들이 중국 공산당의 박해와 소수 종족 문화의 벽에 부딪히면서도 선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1949년-1979년까지 30년간의 모진 박해 가운데서도 중국 교회는 그들이 사는 땅에서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세계 화교 복음운동-1970년대

중국 공산당 기관지 《光明日報》 인터넷판 ‘2015년 중국 국제 이민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 화교(華僑) 총인구는 ‘193개 국’에 약6,0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해외 이민 그룹 중 가장 많은 수를 점하는 그룹이다. 화교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 단위는 단연 미국, 캐나다, 호주,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의 순이다. 이 통계에 의하면 미국은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민 목적지다. 2000~2013년 간 중국 대륙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은 인구는 약90만3천명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중국인들의 미국 이민 수가 감소 현상으로 나타났다.

신문은 중국인들의 이민과 관련하여 현재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정책에 뒷받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 화교 인구 중 2/3가 동남아, 즉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된 것을 고려할 때,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육로 실크로드(陆上丝绸之路)와 해상 실크로드(海上丝绸之路) 정책에 화교들의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개혁개방 후 934만 명의 해외 이민 중국인들 대부분이 북미주와 유럽 일대에 분포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 기업들이 국제화 시류를 타고 유럽과 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에 이민 하여 그곳에서 탄탄한 기업 발판을 마련한 상황인지라, 21세기 중국의 ‘一帶一路’ 정책 진행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화상대회: 전세계 화교 네트워크인 거대한 ‘세계화상대회’(世界華商大會, WCEC, 싱가포르)가 1991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조직, 2년에 한 번씩 모이는 화교들의 국제 조직이다. 2015년에 제13차 대회는 인도네시아, 그리고 2017년 제14차 대회는 미얀마에서 모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화교복음중심: WCEC에 버금가는 화교 기독교 네트워크는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해외중국인복음중심’(世界華人福音事工連絡中心, CCCOWE, Chinese Coordination Centre of World Evangelism; 간칭은 ‘華福’ 혹은 ‘世界華福中心’)이다. CCCOWE는 화교 기독교 단체로서 전 세계 200개 국에 분포된 화교 기독교인들의 힘을 모아 세계 선교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 단체의 선교 활동을 ‘화푸운동’(華福運動), 즉 ‘중국-화교 세계 복음운동’(CCCOWE Movement)이라고 한다.

1974년 7월16일~25일까지 스위스 로잔(Lausanne)에서 개최된 제1차 ‘세계복음화국제대회’(WEIWE)는 전 세계 150여 개국의 135개 개신교 교단 대표 2,700여 명이 ‘온 땅으로 복음을 듣게 하자’(Let the Earth Hear His Voice)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대표들 중에 화교 교회 지도자 70여명도 포함되었다. 화교 대표들은 ‘로잔세계복음대회’(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에서 세계 선교에 대한 강렬한 비전을 얻고, 이어서 CCCOWE를 발기하고, 1976년에 정식으로 조직했다. 당시 4,000처 해외 화교 교회 중 약100처 교회가 적극 참여해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전 세계 9,000여처 교회가 참여하고 있으며, 1,000여처 교회가 또 다른 형태로 세계선교에 협력하고 있다.

WCEC가 화교를 중심한 중국의 세계 경제 동력이라고 한다면, CCCOWE는 화교를 중심한 중국의 세계 선교의 동력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21세기 중국은 이들 두 단체의 협력으로 ‘중국의 꿈’을 이루어나갈 것이다. CCCOWE에 관하여는 뒷부분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이병길  love41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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